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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상식 돋보기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찬반 논란의 핵심 포인트

by WhaleDaddy 2023.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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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ical Background of General Hong Beom-do


• 홍범도 장군의 역사적 배경

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홍범도 장군은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시기에 만주에서 대한독립군의 총사령군이 되어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그의 투사적 정신은 봉오동 전투에서의 승전을 통해 빛을 발했다. 청산리 전투에선 제1연대장으로 참전, 항일단체의 통합을 주도하며 대한독립군단의 부총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단순한 독립운동가로만 국한되지 않았다. 1927년, 그는 소련 공산당에 입당, 연해주의 고려인 지도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 정권에 의해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주로 강제 이주되었고 그곳에서 고려인 공연예술극장의 수위로 일하다 1943년에 서거했다. 그의 업적은 1962년 만주에서의 대한독립군 지휘 및 김좌진 장군과의 협력으로 건국훈장 2등급인 대통령장을 받아 인정받았다.

Controversy Over Statue at the Military Academy


• 육군사관학교의 흉상 문제와 논란

육군사관학교. 이곳의 종합강의동 충무관 앞엔 독립운동의 영웅,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다른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이 자리하고 있다. 2022년부터 2023년까지의 육사 요람에선 이들을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으로 언급하며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최근 이 흉상들 중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문제가 큰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군과 정치권에선 홍범도 장군이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입당한 것을 중심으로 그의 흉상이 육사의 정체성과 맞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국방부 또한 육사의 정체성과 교육을 고려할 때 홍범도 장군의 흉상 설치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 홍 장군이 1921년 러시아 공산당 극동공화국 군대가 자유시에 있던 독립군을 사살한 자유시 참변에 관련되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육사는 홍 장군의 흉상을 외부로, 다른 흉상은 교내의 다른 장소로 이전할 계획을 밝혔다. 이런 결정에 대한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Political Perspectives on Statue Relocation


• 정치권에서 본 홍범도 흉상 이전

이번 육군사관학교의 흉상 이전 문제는 정치권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두 대표적인 정당,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상반된 입장을 취하며 이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밝혔다. 국민의힘은 육사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였다. 이를 대표하여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육사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 시절에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사에 설치된 배경이 문제라고 지적하였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흉상 이전 결정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이를 대표하여 강선우 대변인은 흉상 이전을 역사 쿠데타로 규정하고, “독립영웅을 이렇게 모욕하는 정권은 일찍이 없었다”라며 육사의 결정을 비판하였다. 

이 외에도 다양한 정치인과 단체가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며 논란은 더욱 확산되었다. 이런 정치권의 다양한 반응은 이 문제의 복잡성과 시민들의 갈린 의견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Response of Independence Movement Groups


• 독립운동 단체의 반응과 전망

독립운동 단체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에 큰 우려와 반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항단연)을 비롯한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은 국방부의 이번 결정을 반역사적, 반민족적 범죄행위로 규정하며 강력히 규탄하였다. 이들은 독립운동의 업적과 헌신을 무시하고 말살하려는 의도를 부인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국방부와 관계자에게 이를 명심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문제는 단순히 흉상의 위치 문제를 넘어 우리나라의 역사 인식과 가치관에 대한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독립운동의 업적을 인정하면서도 그 이후의 행보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관과 역사 인식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 같다. 이런 논란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역사의 다양한 시각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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